【 청년일보 】 최근 '쉬었음 세대'라는 표현이 언론과 사회 담론 속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취업이나 학업,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에 놓인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표현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멈춰 섰거나 노력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 쉬었음 세대는 종종 의지 부족이나 태도의 문제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현상을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쉬었음 상태에 놓인 많은 청년들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도전과 실패,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 잠시 멈춰 선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번의 실패가 장기적인 경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쉼'은 여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 소진의 결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 쉼이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쉬는 동안에도 불안은 계속되고, 또래와의 비교는 자신을 위축시킨다. 시간이 흐를수록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은 커지고, 자기비난은 우울로 이어진다. 이는 개인이 약해서 생긴 감정이라기보다, 쉼조차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 환경 속에서 나타나는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청년 우울은 더 이상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무기력과 공허함을 느끼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쉬었음 상태에 놓인 청년들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그 침묵은 곧 자신이 사회의 바깥에 서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우울은 고립으로 이어지기 쉽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우울한 상태에서는 그 여력이 부족하다. 연락을 미루고 만남을 피하는 일이 반복되며 관계는 점차 느슨해진다. 이때의 고립은 선택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연결될 힘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청년 고립 문제 역시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늘날 많은 관계는 직장이나 학교처럼 역할과 성과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역할이 사라지면 관계도 쉽게 끊어진다. 쉬었음 상태의 청년이 사회와 연결될 통로를 잃는 이유다.
물론 모든 쉬었음 청년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며, 각자의 조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쉬었음, 우울, 고립이 반복적으로 함께 나타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청년들은 쉬고 있는가"가 아니라 "왜 쉼이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가"이다. 쉬는 시간이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 잠시 멈춰도 배제되지 않는 안전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쉬었음 세대를 문제로 규정하기보다, 사회가 보내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이는 청년이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경고일 수 있다. 청년의 쉼이 단절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 되기 위해, 사회는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사회가 가져야 할 인식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임수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