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90분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초록빛 그라운드. 축구는 오랫동안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 개인의 감각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선수들의 유니폼 뒤에 숨겨진 정밀 센서는 경기장의 모든 움직임을 숫자로 치환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승률을 계산하고 최적의 전술을 도출하는 데이터는 현대 축구의 승리를 설계하는 새로운 전술가로 자리 잡았다.
◆ 검은 조끼에 담긴 공학: EPTS와 상태 기반 정비(CBM)의 최적화
중계 화면이나 훈련 경기에서 선수들이 유니폼 안에 받쳐 입는 검은 조끼는 단순한 의류가 아니다. 이는 전자 퍼포먼스 트래킹 시스템(EPTS)이라 불리는 정밀 센서다. 이 장치는 선수의 실시간 위치, 가속도, 심박수는 물론 대시 부하까지 초당 수십 회 수집하여 거대한 시계열 데이터를 형성한다.
신선식품 유통 산업이 폐기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듯, 축구 구단 역시 데이터를 통해 선수의 부상 리스크를 관리한다. 과거 부상 이력과 실시간 피로도 데이터를 머신러닝 모델에 대입해 근육 부상이 발생하기 직전의 임계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산업 현장의 상태 기반 정비(CBM) 개념을 인적 자원에 적용한 사례다. 고부가가치 자산인 선수의 가동률을 극대화하고 팀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신뢰성 공학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 결과 너머의 과정: 기대 득점(xG)과 기대 위협(xT)이 바꾼 전술 패러다임
과거의 축구 분석이 슈팅 수나 점유율 같은 단순 결과 지표에 머물렀다면, 현대 축구는 기대 득점(Expected Goals, xG)이라는 확률 모델을 통해 경기를 재해석한다. 슈팅 지점, 수비수 위치, 패스의 질 등을 종합해 해당 상황이 골로 이어질 확률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패스나 드리블이 득점 확률을 얼마나 높였는지 측정하는 기대 위협(Expected Threat, xT) 지표까지 활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요행을 바라는 전략이 아니라, 확률적 기대 가치가 높은 경로로 공을 투입하는 공정 최적화의 과정이다. 최근 명문 구단들이 정교한 빌드업을 선호하는 이유 역시, 데이터가 그것을 단순한 롱볼보다 지속 가능하고 승률 높은 알고리즘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축구는 이제 감각의 영역을 넘어, 기대 가치를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의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 경기장 안팎의 시너지: 팬 경험과 구단 수익의 최적화
데이터의 영향력은 터치라인 밖에서도 발휘된다. 현대적인 축구 구단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플랫폼처럼 작동한다. 경기장 내 관중 이동 경로를 시뮬레이션하여 병목 현상을 해소하고, 동적 가격 책정 알고리즘을 활용해 수요와 공급, 경기 중요도, 날씨 등을 기반으로 티켓 가치를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또한 팬들의 앱 접속 기록과 구매 패턴을 분석해 개인화된 마케팅을 제공하는 과정은 이커머스 기업의 물류 및 수요 예측 전략과 맞닿아 있다. 경기력이라는 제품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이를 소비하는 팬들의 경험까지 데이터로 설계하며 구단은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 데이터가 삼킨 낭만, 혹은 새로운 승리의 문법
데이터 기술이 축구를 지배하면서 경기장의 낭만이 사라진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선수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창의성이 승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견고한 토대다.
우리가 새벽마다 신선한 택배 상자를 받아보기까지 정교한 물류 알고리즘이 작동하듯, 우리가 열광하는 극적인 극장 골 뒤에는 1%의 확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 분석과 공학적 시도가 응축되어 있다.
◆ 승리의 미래, 시스템을 설계하는 분석가의 시선
앞으로의 축구는 더욱 빠르고 정밀해질 것이다. AI 기반 실시간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DSS)이 감독에게 즉각적인 전술 수정을 제안하고, 선수들의 움직임은 디지털 트윈으로 복제되어 가상 공간에서 수만 번의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될 것이다.
결국 스포츠 데이터 분석의 본질은 숫자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복잡한 경기라는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승리의 법칙을 설계하는 일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확률 높은 선택지를 찾아내는 공학적인 시선이야말로, 현대 스포츠가 지향하는 승리의 미래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이혜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