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상징해 온 기준은 오랫동안 '선폭'이었다. 더 미세한 공정을 구현할수록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고, 이는 곧 성능 향상과 전력 효율 개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초미세 공정은 기술력을 가늠하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였으며, 선폭 경쟁은 곧 기업 간 격차를 설명하는 핵심 언어였다.
그러나 공정이 나노미터(nm) 단위로 진입하며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초미세 공정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편차 하나가 곧바로 성능 저하나 치명적인 고장으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무시할 수 있었던 공정 변동성과 결함이 이제는 제품의 장기적인 신뢰성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얼마나 더 작게 만드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더 이상 반도체의 진정한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이 지점에서 '신뢰성(Reliability)'이 새로운 필승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뢰성은 단순히 현재 고장이 없는 상태를 넘어, 특정 환경에서 제품이 목표 수명 동안 제 성능을 유지할 확률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불확실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이 불확실성을 통계적으로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기술력의 핵심이 된다.
특히 기존의 품질 관리(QC)가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변화의 배경이다. 현재의 스펙을 만족한 칩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용 환경에서 조기 열화될 가능성이 있는 '경계 영역(Marginal Area)'의 제품들은 일반적인 수율 지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잠재적 결함이야말로 자율주행이나 AI 서버 같은 고신뢰성 산업군에서는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결국 미래 반도체 산업에서 신뢰성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를 넘어 '전략적 의사결정'의 문제가 될 것이다. 어떤 불확실성을 허용하고, 어떤 리스크를 관리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곧 기업의 실력이 된다. 선폭 경쟁이 기술의 '속도'를 겨뤘다면, 이제는 초미세 공정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반도체 초격차를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다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