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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발언대] 신뢰의 선순환, 지역의료의 실마리

 

【 청년일보 】 지역의료의 위기는 의사와 환자 모두가 도시로 쏠리는 현상에서 시작한다. 이 바탕에는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는 "지역에 환자가 없다"라며 도시 개원을 고집하고, 환자는 "지역 병원은 믿을 수 없다"라며 KTX를 타고 수도권으로 향한다.

 

지난 10일, 한 의료계 협회장의 "도태된 의사들은 지역의료에 관심을 가지라"는 발언이 있었다. 이는 지역의료를 향한 우리 사회의 서글픈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역은 어쩔 수 없이 진료받는 곳이 아니다.

 

경쟁에서 패배한 의료인이 유배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가까운 거리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는 검증된 의료, 신뢰할 수 있는 의료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의 '2024 의료서비스 경험 조사'에 따르면, 환자가 외래 의료 기관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치료 효과'였다. 이는 의료인의 전문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전문성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현대 의학은 과학적인 원리와 표준화된 술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의료 선진국 시스템을 지향한다면, "한국 의료는 철저한 근거 중심주의를 따른다"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소수만 알음알음 찾아가는 '용한 명의'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국민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표준화된 의료를 제공할 책무가 있으며, 동시에 어디에서든 신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의 보편화를 위한 핵심은 엄격한 교육과 관리 시스템이다. 예시로, 한국의 의사 양성 과정은 이중 검증을 갖추고 있다. 별도의 의사 면허 시험 없이 수련을 시작하는 호주와 달리, 한국은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또한 졸업 직후 전공이 확정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1년간 실무 능력을 검증받은 후에야 추가적인 시험을 통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실제 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술기와 태도를 평가하는 실기시험은 미국조차 2020년 이후 중단한 과정이다.

 

모의 환자의 개인적 주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보건복지부의 동일 조사 결과, 외래 서비스에서 담당 의사가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93.4%에 달한다. 현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자료 중 실기 평가를 하는 직종으로는 응급구조사, 의사,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의지·보조기 기사가 있다.

 

이러한 검증 결과, 한국의 회피 가능 사망률은 OECD 평균(228.6명)보다 현저히 낮으며(151.0명) 접근성 또한 독보적이다. 한국은 진료를 원하는 날짜에 받는 경우가 99.6%지만, 커먼웰스 펀드의 조사 결과, 서구권 주요 국가(호주, 미국, 스위스, 캐나다 등)는 당일 또는 익일 진료 비율이 57.2%에 그친다.

 

물론 한국의 현대 의학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불법 의료에 대한 처벌과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무면허 시술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예시이다. 일각에서는 의료 접근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규제 완화나 비전문가의 미용 시술 허용을 주장한다. 하지만 건강은 편리함보다 소중하다.

 

지난 11월, 프랑스는 의사들의 미용 분야 이탈을 막고, 공공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PLFSS 2026 심의에서 미용 의료 규제(사전 허가제, 임상 경험 의무화)를 대폭 강화했다.

 

교통사고는 초록불에서도 일어나지만, 그 사실은 빨간불 아래 무단횡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의료 행위는 엄격한 규제라는 신호등 아래에서 행해질 때 가장 안전하다. 신뢰할 수 없는 불법 시술이 횡행할 때, 그 피해는 국민의 건강을 침해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부작용에 어떤 대처를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 과정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공정한 법의 판단도 신뢰의 영역이다. 성범죄 등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의료인을 엄격히 벌하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인의 노력을 신뢰해야 한다.

 

결국 지역의료를 살리는 길은 신뢰의 선순환이다. 지역에 도태된 의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검증된 의사가 찾아가는 일이다. 가까운 병원의 문을 열 때, 내 앞의 의료인이 최고의 전문가임을 존중하는 일이다. 지역의 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일이다. 환자와 의료인이 자신과 서로를 믿는 일이다.

 

신뢰는 현대 의학의 정확성에서 싹트고, 공정한 제도를 통해 단단해지며, 존중과 믿음으로 뻗어 나간다. 지역의료는 도태된 자들의 차선책이 아니다. 편리함보다 소중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검증된 길을 택해야 한다. 이 선택이 지역의료를 살리고,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랑스러운 한국 의료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정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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