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편의점보다 상품 종류가 적네요. 오랜 시간 동네 단골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곳을 방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홈플러스 신도림점 가공식품 코너에서 쇼핑을 하던 한 40대 소비자는 텅 비어 있는 라면 진열대를 보며 이처럼 말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에서는 대형마트 사업의 핵심 근간이 되는 '상품 공급'이 큰 차질을 빚으며 소비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는 홈플러스가 주요 가공식품 제조업체를 비롯해 일부 생활용품·가전제품 등에 대한 납품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한 가공식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곳에서 상품을 선보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많다"면서도 "다만 납품 대금을 최대한 늦춰서 받는 등 업체 입장에서는 홈플러스 측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현재로서는 이 노력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상품 공급 지연의 영향으로 홈플러스 신도림점 매장에서 쇼핑을 즐기는 소비자를 찾기 어려웠다.
주중 집객 수준이 가장 낮은 시기인 평일 월요일 오전 시간대임을 고려해도 매장 전체에서 장을 보고 있는 소비자는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은 상품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었지만 쉽사리 쇼핑 바구니나 카트에 상품을 담고 있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라면 코너에서 오랜 시간 체류하던 한 30대 소비자는 "신라면과 같이 기본적인 라면이 없는 건지, 찾지 못하는 건지 생각하며 한참을 헤맸다"며 "자세히 보니 매대에 가격표만 비치돼 있을 뿐 대부분 '매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제품을 대형마트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곳을 자주 방문하던 지역 주민으로서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홈플러스 신도림점에는 다양한 제조 브랜드(이하 NB) 상품들이 매진 상태로 안내되고 있거나 아예 진열대 자체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인 과자 코너에서도 NB 상품을 찾기 어려웠다. 유명 과자 브랜드의 상품이 배치돼 있어야 할 자리에는 홈플러스의 자체 브랜드(이하 PB) 상품들이 대신 진열돼 있었다.
특히 상품 납품이 지연됨에 따라 비어 있는 진열대가 늘어나면서 동일한 PB 상품을 여러 코너에서 반복적으로 진열하는 현상도 다수 포착됐다.
매대를 채우던 한 홈플러스 매장 직원은 "현재 매장에서 판매 중이지 않은 제품들은 언제 다시 들어올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며 "손님들에게 상품이 없다고 안내할 때마다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스스로도 홈플러스가 대형마트로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류 코너에서는 특정 주류 상품 브랜드 한 개가 상품 진열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주류 코너에서 맥주 상품은 OB맥주의 '카스'가 전체 매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해외 맥주 브랜드로는 '버드와이저' 단 한 개의 브랜드만 소수 비치돼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매장의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맥주 코너에는 약 50여 종의 브랜드가 비치돼 있다. 또한 대형마트 평균 전체 납품 맥주 브랜드는 약 230개에 이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맥주 코너의 브랜드 다양성은 대형마트의 납품 역량을 보여주는 단적인 상품군 중 하나"라며 "이와 같은 상품군에서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주요 NB 업체뿐만 아니라 해외 주류를 납품하는 중소 규모 업체들과의 거래 관계도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신도림점보다 규모가 큰 식품 특화 매장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영등포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메가푸드마켓'이라는 매장명이 무색할 정도로 신선식품을 제외한 가공식품의 납품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일례로 라면 코너에는 '국민 라면'으로 불리는 농심의 '신라면'도 찾을 수 없었고 삼양의 인기 라면인 '불닭볶음면' 역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진열대 아래 위치한 가격표에는 여전히 이들 상품명이 적시돼 있었지만 '매진'이라고 표기되지 않은 상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신 해당 라면 매대에는 하림 혹은 PB 상품들이 반복적으로 진열돼 있었다.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즉석 밥' 코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코너에는 CJ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 '햇반' 제품들이 일부 진열돼 있었지만, 상품의 재고 수나 그 종류가 현저히 부족했다.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조미료, 기타 요리 재료 상품들의 납품도 상당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즉석식품의 대표 제품인 오뚜기의 '3분 시리즈'는 매장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기에 각종 요리에 필요한 필수 식재료인 '고춧가루'도 매진을 이유로 구매할 수 없었다.
메가푸드마켓 영등포점의 주류 마켓에서는 신도림점의 상황과는 반대로 카스가 아닌 하이트진로의 '테라' 제품이 매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신도림점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외 맥주 브랜드는 더 이상 판매되고 있지 않았다.
해당 매장의 한 직원은 "비어진 매대를 현재 채울 수 있는 상품들로 최대한 메우라는 지시가 있지만 빈 공간이 너무 많아 한계가 있다"며 "솔직히 말하자면 특정 코너의 경우 동일 제품 몇 가지로 넓은 매대를 겨우 메워 '마트 구색'만 갖추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NB 상품 납품 중단은 홈플러스의 판촉·마케팅 프로모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례로 올해 1월 이후부터 홈플러스의 대표 주간 할인 행사인 '인공지능(AI) 물가안정 프로젝트' 등에서 판매되는 할인 상품이 전년 동기 대비 그 품목과 범위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홈플러스는 해당 행사에서 다양한 NB 상품에 대한 묶음 할인 행사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해 왔지만 올해 들어 이 상품들을 PB 상품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매장 내부에서도 PB 상품 위주의 할인 판촉물이 비치돼 있었다.
업계는 이처럼 상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홈플러스의 상황이 현재의 기업 회생 과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수가 적어진 것을 넘어 이를 대체할 상품마저 찾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해당 매장을 방문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며 "대형마트업의 본질은 다품종·최저가 경쟁인데 이러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납품 현장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홈플러스에 정상적으로 상품을 공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며 "이러한 관측이 구체적으로 서울 시내 매장에서조차 실현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종사자는 "홈플러스가 긴급 운영자금(DIP) 3천억원을 확보한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매장 재방문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와 같이 상품이 납품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적절한 상품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브랜드 신뢰도는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재방문률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 시내 주요 매장에서도 상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홈플러스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대형마트업의 근원적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NB 제조사 상품의 납품 중단 사태와 관련해 "매장의 규모와 매출에 따라 상품 납품 상황이 상이할 수 있다"며 "납품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동되고 있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업체에는 농심·삼양식품·롯데웰푸드·오뚜기·동서식품·오리온 등 다수의 주요 식음료 업체가 포함돼 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을 비롯해 LG전자 역시 홈플러스에 상품 납품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