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미 원전 협력 관련 외교 일정이 잇따르면서 국내 건설주가 들썩이고 있다.
올해 1월 초부터 3월 18일까지 대우건설은 세 배 가까이 올랐고, 현대건설 또한 두 배 넘게 뛰었지만, 같은 건설업종인 HDC현대산업개발은 5%대 상승에 그쳤다. 원전 시공 이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시장이 건설주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지난 18일 오후 코스피 건설업종이 들썩였다. 대우건설이 22.79% 오른 가운데 이날 하루 거래량은 1억1천200만주로 평소의 7~10배 수준이었다.
GS건설도 16.59% 뛰었고 현대건설은 5.65% 상승했다. 반면 같은 건설업종인 HDC현대산업개발은 6%, DL이앤씨는 9.21%, 삼성물산은 6.98%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날, 같은 업종이었지만 종목마다 반응이 엇갈렸다.
배경에는 워싱턴발 소식이 있었다. 그날 산업통상자원부 1급 인사들로 구성된 한미 협상 실무단이 워싱턴에서 미국 측과 협의를 시작했고, 총 3천500억 달러(약 50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중 약 2천억 달러가 원전 등 에너지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는 내용이 시장에 퍼지면서 주가가 즉각 반응했다.
이런 패턴이 처음은 아니었다. 1월 초 6만9천원대에서 횡보하던 현대건설은 1월 23일 하루 만에 16% 올라 52주 신고가를 찍었다.
2월 4일에는 한국 정부가 2천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첫 번째 카드로 한국형 원전 모델인 APR1400을 미국 현지에 건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전 관련주가 다시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보도 직전 김완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러트닉 상무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과 만나 원전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이 알려진 영향이었다.
실제 러트닉 장관은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우리는 원자력 발전부터 시작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자금을 댄 수천억 달러로 원전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AI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력 수요를 원전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이었다.
3월 들어서도 흐름은 이어졌다. 12일 대미 투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4일에는 현대건설(설계·조달·시공 담당)과 미국 원자로 제작사 홀텍, 일본 미쓰비시가 3자 파트너십을 공식 체결하며 웨스팅하우스의 소형모듈원전(SMR) 팰리세이드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같은 건설업종 안에서 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이 두드러진 반응을 보인 이유는 각 회사의 원전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중 해외 원전을 실제로 수출한 전례가 있는 유일한 곳이다.
2009년 한국전력 컨소시엄의 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서 시공을 맡은 이후 웨스팅하우스와 독자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이번 홀텍·미쓰비시와의 파트너십도 그 연장선이다.
대우건설은 2024년 7월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서 한국 기업 컨소시엄인 팀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시공 주간사 자격을 확보했다. 최종 계약까지 아직 과정이 남아 있지만, 해외 원전 수주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첫 사례가 됐다.
GS건설은 신월성 1·2호기, 신한울 1·2호기 사업에 부주간사로 참여한 이력이 있어 국내 원전 건설 현장 경험을 보유한 건설사로 분류된다.
이 흐름의 밑바탕에는 글로벌 원전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AI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유럽에 원전을 실제로 지을 수 있는 시공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5년간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서방 국가들의 시공 인력은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됐다.
반면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이 한국 건설주에 반응하는 건 외교 일정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나라가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다만 주가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실제 사업이 그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지는 별개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8일 NH투자증권 보고서는 종목 간 차별화 근거로 원전 시공 역량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별 원전 시공 인력은 현대건설 약 900명, 대우건설 약 350명, GS건설 약 100명 수준으로, 피크 타임 기준 현대건설은 원전 6기, 대우건설은 2기, GS건설은 1기를 동시에 시공할 수 있는 규모다.
NH투자증권 이은상 애널리스트는 "독보적인 원전 시공 레코드와 전문 인력 풀은 글로벌 원전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10년간 공기 준수 및 예산 내 시공 실적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어 원전 수출이 가능한 시공사 중 경쟁력이 가장 높다"라고 밝혔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시장의 시각 변화가 읽힌다. NH투자증권은 현대건설의 원전 부문에 글로벌 원전 기업 기준인 EV/EBITDA 22배를 적용했는데, 건설주에 통상 적용되는 7배와는 전혀 다른 잣대다.
이에 대해 IR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을 이제 건설회사가 아닌 원전회사로 본다는 뜻"이라며 "평가 잣대가 바뀌면 주가의 목표치도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제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팰리세이드 SMR 착공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고, 대우건설이 시공 주간사로 참여하는 체코 원전은 최종 투자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베트남 원전 수주 일정 또한 2027년으로 전망된다.
대우건설의 재무 상태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2025년 영업손실은 8천154억원, 순손실은 9천123억원이었고 부채비율은 284.5%에 달한다. 원전 관련 실적이 본격화되려면 아직 수년이 필요하지만, 주가는 이미 연초 대비 세 배 가까이 올라있다.
시장은 한미 협상 실무단이 워싱턴으로 향할 때마다 주가를 먼저 올렸다. 한미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방미사절단은 오는 23~29일 미국 의회를 찾아 원전 건설을 대미투자 사업으로 직접 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외교 일정은 계속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