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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발언대] 한글 대중화와 한글날의 역사

 

【 청년일보 】 10월 9일은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한글날로 올해 576돌을 맞았다.


한글날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를 기념하기 위해 1926년 음력 9월 29일 ‘가갸날’이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고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이후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됨에 따라 1945년 책의 발간 시기인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다.


한글이 창제된 시기는 1446년으로 6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한글 사용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기는 10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한자를 중심으로 이원화된 언어 문자 생활을 영위해왔다. 19세기 중반 이후 전통 사회가 붕괴되고 근대적 사회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개화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국어국문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국가시험에 국문 과목이 포함되고, 법률 칙령이 한글로 개편되는 등 한글 사용이 공식화되었다.


1896년 창간한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은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규범화하여 적용하였다. 이후 독립신문사 안에 설립된 ‘조선문동식회’를 시작으로 1907년 설립된 국문연구소에서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한글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한글은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이 시기에‘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상승 궤도에 막 들어선 한글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어 일본어 보급이 확산됨에 따라 국문의 기능을 잃어갔다. 공·사립 교과과정에 한국어시간이 줄어들고 일본어시간이 대폭 증가된 것이다. 


이에 한글 보존과 연구를 이어 나가기 위해 주시경 선생의 제자인 임경재, 최두선, 장지영 등을 중심으로 1921년 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창설되었다. 조선어연구회는 한글의 보존을 통해 민족정신의 함양을 추구하여 1926년 한글날 기념식을 처음 거행하였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오늘날 국경일로서 명분을 이어가고 있는 한글날은 한글 창제에 대한 기념뿐만 아니라 한글 보존의 역사와 민족적 저항에 대한 의미 또한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 청년서포터즈 6기 진휘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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