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올해 겨울도 건설업계는 감당하기 힘든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했다.
지난 2년간 누적된 공사비 급등 갈등이 입주를 앞둔 단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신탁사의 유동성 위기와 본격적인 동절기 한파 비용까지 겹치며 현장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 "돈 더 안 주면 못 짓는다"...해 넘겨도 끝나지 않은 갈등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원자재값 상승분을 반영해달라는 시공사와 이를 거부하는 조합의 갈등은 착공 단계부터 입주 직전까지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달 입주를 앞둔 잠실 진주(잠실 래미안 아이파크)는 막판까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해당 사업장은 이미 지난해(2024년) 초 시공단이 공사비를 588억원 증액 요구하며 조합과 극심한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어 올해 초 3차 공사비 증액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조합 내부의 진통은 계속됐다.
당시 3.3㎡(평)당 공사비 인상과 공사 기간 연장 문제를 두고 겪었던 진통이 입주 시점인 현재까지도 최종 정산 문제로 이어지며 조합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공사 중단이라는 파국을 맞았던 현장의 상흔도 여전하다.
이촌 르엘(이촌 현대 리모델링)은 지난해 10월, 시공사가 도급액을 당초 약 2천700억원에서 4천900억원대로 80% 이상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며 공사를 전면 중단(셧다운)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후 공사는 재개됐 현재는 입주까지 마쳤지만 공사비 검증과 추가 분담금을 둘러싼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계의 대표적인 '공사비 리스크'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장위 4구역(장위 자이 레디언트) 등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들이 지난 1년간 유치권 행사 예고와 협상 결렬을 반복해오며, 급등한 자재비를 감당하지 못한 시공사의 절박함과 분담금 폭탄을 맞은 조합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같은 대형 건설사의 공사비 갈등은 대부분 합의로 끝나지만 중소 건설사들의 사정은 다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지방 건설사들은 급등한 공사비와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거나 아예 건설업 면허를 반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 통계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 수는 40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 증가했다.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대치(641건)를 위협하는 가파른 증가세로, 연말까지 700건을 넘어설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대형사보다 신용도가 낮은 이들은 최근 신탁사 리스크로 인해 금융권의 대출 만기 연장마저 거부당하고 있어, 준공을 목전에 두고도 유동성 부족으로 현장이 멈춰 서는 '줄도산'의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실정이다.
◆ 무궁화신탁발(發) PF 경색...자금줄 막힌 건설사
실물 비용 갈등은 금융 시장의 리스크로 전이되며 건설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지난달 말 무궁화신탁의 관계사인 무궁화캐피탈이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격히 냉각됐다.
시장에서는 시공사의 부실을 신탁사가 떠안는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사업장의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비 상승으로 시공사의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인 신탁사의 유동성마저 흔들리자, 금융권은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 회수에 나섰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무궁화 사태 이후 대부분 '올 게 왔다'는 분위기"라며 "주변에서도 무궁화가 가압류를 걸어 놓은 현장이 많아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대출이 끊긴 것은 아니더라도, 자금 회전이 예전처럼 원활하지 않다 보니 다들 신규 사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전했다.
◆ 한파에 비용 부담 가중..."겨울 나기 버겁다"
자금난 속에 찾아온 12월의 한파는 현장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콘크리트 품질 유지를 위한 보양(양생) 비용이 급증했다. 동절기 타설 작업을 위해서는 갈탄, 열풍기 등 난방 연료 투입이 필수적인데,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실행 원가율도 치솟았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강화에 따라 미끄러짐 방지, 질식·화재 사고 예방 등 겨울철 안전 관리에 투입되는 인력 및 장비 비용도 건설사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솔직히 지금은 안전관리 비용까지 추가되며 공사비가 더 올라간 상태"라며 "자재비와 인건비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고, 수익성이 확실한 도시정비 부분에만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건설업계는 비용 인상(Cost push)과 유동성 축소(Credit crunch)가 동시에 발생한 복합 위기"라며 "입주를 앞둔 단지까지 공사비 분쟁에 휘말리는 등 주택 공급 불안이 가중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중재와 유동성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